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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의 레전드 지안프랑코 졸라(Gianfranco Zola)

from Ji@memo 2008/01/06 20:28
Goal.com의 첼시 역대 베스트 일레븐이라는 기사를 보면 체코 국가대표팀의 골키퍼이며, 슈마이겔 이후 최고의 골키퍼라 불리우는 체흐와 현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이며 첼시의 상징이란 불리우는 존 테리, 조세 무리뉴 감독 지도 아래서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명으로 성장한 프랭크 렘퍼드와 함께 첼시 최고의 선수라고 불리우는 선수가 속해져 있습니다.

때는, 2002년 대한민국과 일본의 월드컵이 성대하게 마무리되면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박지성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들끓어오를 즈음에 접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경기에서 박지성처럼 작은 키에 그라운드를 누비며 환상적인 드리블과 정확한 킥을 보여주었던 선수가 있었습니다. 바로, 골닷컴에서도 선정한 첼시의 레전드인 지안프랑코 졸라(Gianfranco Zola)

지안프랑코 졸라(Gianfranco Zola)

최고의 재능을 지닌 공격수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것을 이룬 영웅으로 브라질읠 펠레를 손꼽고, 최고의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는 마라도나를 손꼽습니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그 찬란한 재능이 완전히 만개하기 전에 스타로서의 무게감을 잃어버린 마약에 대한 의존으로 과소평가 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최고의 재능에 흠집이 나버린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 마라도나가 지닌 최고의 재능에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또 한명의 선수가 있습니다. 1966년 생으로 168cm의 단신이었지만 작은 키를 이용하여 빠른 돌파와 간결한 패스를 선보였던 로만제국이 되어버리기전 중상위권의 첼시를 프리미어리그 강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지안프랑코 졸라(Gianfranco Zola)

1984-1985년 세리아 C에 뉴오레세(Nuorese)에서 프로생황을 시작한 그는 4경기에 출장하였고, 이듬해 27경기에 출장하며 10골로 주전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1987-1989 토레스(Torres)에서 88경기에 21골을 넣었던 그는, 마침내 1989-1990년 시즌에 마라도나가 활약하던 나폴리(Napoli)로 이적하게 됩니다. 나폴리에서의 1993년 시즌까지 배운 기술들은 그가 테크니션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며, 이 기간동안 마라도나를 도와 스쿠데토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라도나의 이적과 구단의 재정난으로 나폴리에서의 105경기 32득점의 기록을 남기고 파르마(Parma)로 이적하게 되고 이적 첫해 18골, 이듬해 19골을 기록하며 팀을 진두지휘 하지만 스쿠데토의 꿈은 번번이 좌절되었습니다. 결국, 1995년부터 부진을 거듭하던 그는 첼시로 이적하게 됩니다. 102경기 49득점의 파르마 기록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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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의 레전드가 되다

당시의 첼시는 당대의 최고 영웅들이 모여있는 "양로원"’이라고 불리는 이미지였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않고 첼시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세컨드 스트라이커, 윙 포워드 등 다양한 곳에서 뛸 수 있는 올 라운드 플레이어인 그에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는 훌룡한 무대였으며, 새롭게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며 그는 화려하게 부활하였습니다.

골닷컴의 평가에 『1996년 11월에 스탬포드 브릿지(첼시의 홈 경기장)에 도착하여 6개월 간 활약하면서도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졸라는 늘 경이적인 골들로 '올해의 골'에 도전하는 선수같아 보일 정도였고 입단 첫 해에 첼시에 FA컵 우승을 안겼다』라는 대목은 그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속해있던 첼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아스날, 리버풀과 함께 빅4의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첼시는 당시 1954-1955년 리그우승이 유일한 팀이었으며, 1993년 프리이머리그가 개막된 이후 1993년 11위, 1994년 14위, 1995년 11위, 1996년 11위의 중위권 팀이었습니다. 파르마에서와 같은 찬란한 그의 플레이는 빛이 났지만 그에겐 "무관의 제왕"이라는 명예스럽지 않은 별명도 함께 였습니다.

졸라가 이적하기 전과 이적한 후의 첼시의 프리미어리그 성적표를 보면 그의 활약상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그는 첼시에 속했던 1996-2003에 229경기에 출장하여 59득점을 올렸습니다.

1993년 프리미어십: 11위(56 승점, 42 경기)
1994년 프리미어십: 14위(51 승점, 42 경기)
1995년 프리미어십: 11위(54 승점, 42 경기)
1996년 프리미어십: 11위(50 승점, 38 경기)
1997년 프리미어십: 6위(59 승점, 38 경기)
1998년 프리미어십: 4위(63 승점, 38 경기)
1999년 프리미어십: 3위(75 승점, 38 경기)
2000년 프리미어십: 5위(65 승점, 38 경기)
2001년 프리미어십: 6위(61 승점, 38 경기)
2002년 프리미어십: 6위(64 승점, 38 경기)
2003년 프리미어십: 4위(67 승점, 38 경기)

그의 활약상을 국내에 전했던 2002년 사커라인의 한준희님의 글 중에 졸라의 영향력과 활약을 알수 있는 소식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첼시의 상승세의 중심에는 '단연' 1966년생인 지안프랑코 졸라가 있다. 현재 9골(1위) 3어시스트(공동 12위)를 달리고 있는 졸라는 전성기와 다를 것이 없는 개인기와 위력적인 세트플레이 능력, 넓은 시야, 창의성과 정교함을 겸비한 패스들, 체력 문제를 드러나지 않게끔 만드는 효율적인 움직임으로써 리그 내 모든 클럽들의 쟁쟁한 후배들을 제치고 '바클레이카드 프리미어쉽 10월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만 36세가 된 나폴리, 파르마의 천재가 과시하는 이러한 '건재함'에 지금 첼시의 후배들 또한 크게 자극받고 있는 상태.

졸라의 활약과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는 그의 나폴리 시절의 은사이기도 한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의 다음과 같은 인터뷰들을 보면 쉽사리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심지어 이탈리아어로도(라니에리 감독의 영어는 초보적인 수준이다) 지안프랑코를 적절히 묘사할 수 있는 어휘들을 찾을 수가 없다. 그는 (키가) 작은 사나이에 불과하지만 그는 거인이다. 우리의 리더이며 팀원들에겐 위대한 본보기다" - 맨체스터 시티 전 이후.

"졸라는 우리의 천재다. 환상적이다. 현재로선 대체불가능하다. 그가 볼을 잡을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공격을 시작한다. 그는 팀을 위해 플레이한다. 그는 언제나 볼을 받을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 있으며 재빨리 패스한다" - 버밍엄 시티 전 이후.

"그는 '지안프랑코 소(小)황제'다" - 블랙번 로우버스 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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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제국의 건설과 천재의 퇴장

2003년 『36세의 엄청난 돈이 굴러 들어왔다. 하지만 36세의 진정한 영웅이자 천재는 떠났다』는 부재로 알려온 로만제국의 건설과 졸라의 퇴장.

러시아의 석유재벌로, 막강한 재력을 자랑하던 로만 아브라히모비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가능성 있는 파란색 강호 첼시를 사들입니다. 그가 마음 먹기에 따라서 첼시는 이제 양로원이 아닌 최고의 용병을 사올 수 있는 재정규모를 가지게 된것이며 이러한 그들의 힘은 2004-2005년과 2005-2006년 프리미어리그 연패를 달성하며 최고조에 이릅니다.

그러나, 로만제국이 건설되던 그 시기에 졸라는 첼시를 떠납니다.

지안프랑코 졸라는 의심의 여지없는 천재적인 재능은 물론, 클럽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영웅이요, 클럽의 다른 후배들을 위한 귀감이요, 정신적 지주였다. 그리고 또한 졸라는 에릭 칸토나나 로이 킨이 보여 왔던 ‘과도함’, ‘지나침’ 없이 이러한 일들을 해냈다. 국제 정세의 극도의 불안 속에 모두가 꺼리는 이스라엘 원정길에 나설 때에도 가장 먼저 비행기에 오르고 비행기로부터 내려왔던 인물 또한 지안프랑코 졸라였다. 너무도 많은 다국적 용병들, 그리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젊은 선수들이 점점 더 늘어나며 여러 가지 골치를 앓아온 클럽 첼시에서 졸라는 그라운드 안팎의 ‘모범’이자 후배들에 대한 ‘자극제’였다. 모범적인 건강관리법으로써 첼시 의무진들에게까지 ‘한 수 가르침’을 던져준, 37세를 바라보는 졸라의 최상의 플레이들은 첼시의 20대 초반 후배들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술을 끊게끔 만들었다. - 사커라인 기사 중.

당시 38살로서 자신의 고향팀이자 처음으로 축구를 시작했던 칼리아리에서 팬들과 고향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플레이를 보여주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그의 고별경기... 팬들은 졸라에게 환호를 보냈습니다.

첼시는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사라고사를 상대로 04/05 시즌을 준비하기 위한 마지막 친선 경기를 가졌다. 보통 조용한 분위기에서 열리는 오프 시즌 친선 경기이지만 38,067명의 많은 관중이 운집한 이유는 바로 38세의 노장 졸라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비록 27분 동안의 시간이었지만 졸라는 짧은 시간동안 자신의 마술 같은 능력을 아낌없이 선보였다고 한다. 경기 결과는 올 시즌 새로이 영입한 디디에 드록바, 스콧 파커 그리고 상대의 자책골로 첼시의 3-0 완승.

경기가 끝나고 졸라는 무엇보다도 아낌없는 환호를 보내준 팬들의 성원에 큰 감사를 표시했다. 또한 02/03시즌 이후 고향팀인 칼리아리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리를 만들어준 첼시 구단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했다.

"정말로 환상적인 경기였다. 그리고 팬들의 놀라운 환호에 다시한번 큰 감동을 받았다."







첼시 역대 베스트 일레븐
첼시, '졸라의, 졸라에 의한, 졸라를 위한'
이미지 출처 : 케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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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6 20:28 2008/01/06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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