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4 - 카이사르 @ 책
2008/06/1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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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우스가 공화파였던 술라의 그늘에서 무럭무럭 자라났지만 공화정에서 주장하는 연공서열식 정치참여가 아닌 능력주의적인 면모를 보였고 이를 관철시켜왔던 것과는 달리, 세력권이 넓어진 로마에 공화정의 한계를 직시하였던 카이사르는 공화정에서 언급한 요구하는 나이인 30세에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로마 원로원에 알리게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카이사르는 31세에 재무관에 선출되어 비로소 로마 공직의 첫걸음을 뗀 이 후 기원전 63년 37세에 로마의 "최고제사장"이 되었고, 이듬해 법무관에 선출되었고, 이듬해에는 전직법무관으로 히스파니아 울테리오르 속주 총독으로 떠났다. 속주 총독 취임시에 최대 채권자였던 크라수스의 보증으로 겨우 떠날수 있었다(엄청난 빚쟁이 카이사르는 역시 대단하다)
히스파니아 총독시절 이베리아 반도의 대서양 연안까지 로마에 복속시키고 합리적인 조세정책으로 총독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기원전 60년 로마로 돌아와 개선식을 요구하였으나 원로원의 견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폼페이우스와 협력하여 첫번째 집정관에 선출된다. 이 과정에서 제1차 삼두정치가 이루어지는데, 동양징벌에 성공하였으나 아무것도 받지못한 품페이우스의 퇴역병에게 토지를 지급하고, 경제세력을 대변할 크라수스가 포함된 것이다.
기원전 59년 집정관에 당선되어 농지법을 개혁하고, 원로원의 힘을 약화시켜 나간다.(로마인들은 이 해를 ...'율리우스'와 '카이사르'가 집정관을 지냈다...로 표현했다 한다)
기원전 58년 카이사르는 전직 집정관의 자격으로 갈리아 나르보넨시스와 일리리쿰의 두개 로마 속주의 총독으로 임명되었고 이후 7년이라는 기간동안 갈리아 전역을 장악하고 로마의 속주로 만들었다. 카이사르는 이 과정을 《갈리아 전쟁기》라는 걸작으로 남겼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4 - 카이사르'는 '로마인 이야기 3'에서 언급한 술라에서 품페이우스로 이어지는 로마 공화정 말기와 카이사르가 집정관에 선출된 이후 벌어진 갈이아 전쟁을 다루고 있다. 날로 먹는 느낌도 있지만, 저자의 카이사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분량이며, 세세한 과정의 묘사가 눈 앞에 펼쳐지듯이 다가왔다.
다만, 나나미가 참고한 《갈리아 전쟁기》를 읽어보면 '로마인 이야기 4'에 등장하는 갈리아의 전쟁사가 쉬엄쉬엄 편안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닌 거대 원시림과 같은 어둡고 음침한 숲 속을 헤치며 진군하는 로마군단의 모습이 오버랩되어졌다. 악전고투. 그것이 어쩌면 갈리아 전쟁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아닐까싶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 짧은 시간동안, 로마에 아직 공화정의 흔적과 공화정의 힘들이 잔존해있던 상황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룬 카이사르의 행적이 그를 위대한 인물로 평가하게 만든 것이리라. 또한, 영국과 프랑스등 서유럽의 역사가 시작되게 만들었던 갈리아 전쟁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을 읽을수 있다.
[갈리아 전쟁 간략정리]
전쟁 1년. 갈리아 키살피나, 프로빈키아, 일리리아의 3개 로마 속주의 총독으로 임지에 도착 한 이후, 게르만 족에게 밀려 난 헬베티족이 브리타뉴 지방으로 대이동으로 시작하게 된다. 헬베티족이 그들의 민족이동을 위한 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지만, 카이사르와 하이두이족은 불가의 입장을 표명하게 된다.
손 강에서 헬베티족을 무찌른 후 강화협약이 진행된다. 이후 갈리아인들은 게르만족인 수에비족을 물리쳐 달라고 카이사르에게 부탁하고 카이스라가 수에비족의 수장 아리오비스투스와 협상을 시작했으나 브장송에서 협상을 결렬되고 수에비족과 전투를 벌여 승리한다.
전쟁 2년. 갈리아 북동부 경계에서 레미족과 동맹을 맺고 벨가이의 여러부족 연합체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 30만명이 이르는 벨가이 전사들의 거센 저항을 뚫고 카이사르는 센강을 건너 갈리라 북동부를 평정하였고, 크라수스의 아들에게 대서양 연안의 평정을 지시한다.
전쟁 3년. 1차 삼두정치의 주역인 크라수스, 품페이우스가 공동 집정관에 선출된 이후 다시 만나 ‘루카회담’을 통하여 방향성을 재점검 하였다. 로마에 반기를 든 갈리아 서부 지역을 평정하였고 라인강에서는 티투스 라비에누스가, 노르망디는 사비누스, 아키텐에서는 청년 크라수스가 각각 승리하였다.
전쟁 4년. 라인강으로 진격하여 우시페테스족과 텐크테리족을 공략하고, 라인강 중간지점에서 다리를 놓아 처음으로 라인강을 넘어 수감부리족을 공격하고 우비족과 화평을 맺었다. 도버해협을 넘어 브리타니아 원정에 나섰다.
전쟁 5년. 전년에 이어 제2차 브리타이아 원정에 나섰으며, 게릴라 전술을 펼치는 브리타이아 인들을 템즈강을 건너 쳐들어가 강화를 맺었다. 가을에 갈리아로 돌아왔으나 부족한 밀 수확으로 인한 에부로네스족의 암비오릭스의 계략에 말려들어 9,000명이 몰살하는 위기를 겪게 된다.
전쟁 6년. 반란을 일으킨 네르비족을 제압하고, 파리에서 갈리아 부족장 회의를 주재하여 세노네스족과 카르누테스족의 복종을 받은 후에 트레베리족을 격파하였다. 라인강에 다리를 만들어 두번째 라인강 도하를 하였다.
전쟁 7년. 카르누테스족이 로마인을 살해하고 로마에 반기를 들었고 아르베르니족의 족장이 된 베르킨게토릭스가 갈리아 부족들을 결집하였다. 몇번의 전투를 거친 이후 알레시아 요새에서 6만 명의 병력으로 농성하던 베르킨게토릭스를 포위하여 그의 투항을 받아낸다.
전쟁 8년. 《갈리아 전쟁기》 7권을 간행하고, 알레시아 공방 전이후 전후처리를 하여 모든 부족을 로마에 복속시킨다. 그리고… 루비콘 강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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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9 12:42클레오파트라는 시저의 연인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Tracked from 정철상의 커리어노트